나는 답변(을 검증하는)기계로서의 삶을 받아들어야 한다

나는 요즈음 내가 하는 일에 강한 피로를 느낀다. 사람들이 AI(사실상 ‘지능’이 없는 놈이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로 뽑아낸 글과 자료를 검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서술형 문제인데, 출제된 문제는 보지도 못하고 답지만 보고 체점을 해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우리회사의 기술로 이루어진 상품들을 보다 널리 이용하게 하여, 매출 증대에 기여를 하는 영업조직의 엔지니어이다. 나의 일은 결과적으로 사용자들의 business problem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가며 요건이 구체화되고 청사진이 그려지며 로드맵이 완성된다.
질문과 답변, 문답. 나의 역할에서는 많은 경우 질문을 받고 답을 해야 하는 쪽이다. 모든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갑의 위치를 인지하는 쪽은 성실하게 물어오지 않는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답 대신 질문을 통해 구체화된 된 문제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나는 좋아한다. 그렇게 바른 답을 도출하여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요즈음에는 혹은 이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 나는 더이상 고객의 고민, 사용자의 불편과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 한다. 나와 다른 모든 이들 사이에 AI가 거대한 장벽을 두루고 있다.
나는 누군가의 알 수 없는 프롬프트 입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plain text, markdown, html 형식의 문서와 마주해야 하고, 그것들의 헛소리(hallucination)을 검증하는 도구적 노동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도록 장려되고 있는가? - 라는 의문을 하루에 수십번 되뇌는 처지가 되었다.
이걸 나에게 chat, mail, 그리고 slack으로 뿌려대는 사람들은 내용을 읽어보기나 했을까? - 라는 의문을 품은채, 서른 해 동안 내 기억으로 남겨진 경험이라는 이름의 정보를 실마리로 삼아 문제의 소지를 찾는 것에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불편한 피로가 몰려온다.
기계의 결과를 검증해주는 상위계급의 지적존재 취급 받는 것에 기뻐할 일인지, 기계가 터진 모니터라고 나불댄 결과를 한 음절 한 어절 꼼꼼히 읽어가며 ‘헛소리’를 찾아 내는 것이 나의 일이 되어버린, 이 처지를 한탄해야 할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나는 어제 나만의 에이전트 군단(이라고 하기엔 조촐하니, 소대라고 하는 게 맞을 듯 한데)을 느좋코딩으로 만들었다. LLM이 생산해서 (생각없는 사람이 중계자로 있긴 하지만) 던져주는 메시지를 검증하려 했다. 결국 AI가 뱉은 침은 AI가 닦자! 라는 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조직한 에이전트 소대도 LLM이니 결국 그 녀석이 뱉은 음절과 어절 사이를 다시 내가 읽어야 했다. 난 무심히 나의 메시지를 책임없이 던질 상대가 없기 때문에! 결국 나의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제와 같은 오늘 하루를 보내었다.
싱가폴이 서울보다 시원하다는 이 미친 날씨, 이 세상에 잘 어울린다.
그래도 석달 뒤에는 두꺼운 코트를 꺼내어 입을 것이다, 반드시.
상단 이미지는 Nano Banan 2, gemini-3.1-flash-image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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