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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신문용지1에 이런 저런 잡생각을 글자로 옮기는 걸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문송한 분들의 기술에 대한 당찬 자기 주장2을 곱씹으며, 만약 그 것들이 불현듯 ‘참’이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 라며 SF 소설의 시놉시스로 만들어 보곤 한다.

SF 소설 한 편을 몇 년 전부터 적고 있다. 사랑과 사랑이 … 아, SF가 아니라 판타지인가? 아무튼, 최근 어떤 영화로부터 비롯된, 한국 SF 영화들은 왜 성공하지 못 하는가? 라는 질문에 연출자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 그러니까, SF 장르에 대한 존중과 성실을 보이지 못 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한 문화평론가의 유투브 영상을 힘주어 시청했던 기억이 나의 창작활동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의 믿음에서의 SF는 ‘설정과 내적 논리가 곧 서사의 엔진’ 이라고 한다. 그의 말은 내 가슴 가운데에 멈춰 있다. 그 동안 적어 두었던 종이뭉치들을 헤집어 보며 - 역시 신문용지에 연필로 적었다 -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가 레퍼런스로 삼은 소설 책들을 주문했다. 오늘 배송되어서 뜯어 봤는데, 아차! 한 권은 약 10년 전에 샀었고, 또 다른 한 권은 나의 창작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내 손을 한 번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서점은 한 때, 샀던 책을 다시 장바구니에 넣으면 ‘이미 구매했던 책’이라며 알려 줬던 것 같은데, 그 기능은 사라졌는지 아니면 내가 무심히 메시지를 놓쳤는지 알 수 없다. 이 문장을 적기 직전에 이미 샀던 책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어봤는데, 별 반응이 없는 걸로봐서는 그 기능은 사라졌거나 애초부터 있지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믿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 아니거나. 중요한 건 이미 샀든, 샀다가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든, 지금은 찾을 수 없기에 읽기 시작한 거 그냥 읽기로 했다. 이제 내 머릿속이 어정쩡한 스포일러로 가득하다.

책을 재구매하는 경우는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선물할 요량이고, 두번째는 다시 읽고 싶은데 도저히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찾을 수 없다는 건 두 가지로 다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진정 내가 책장 어디 곳에 꽂아 놓은 건 분명한데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는 경우이고, 나머지는 빌려줬는지 팔아버렸는지 친구집 냄비 받침으로 전용했는지 - 내가 양말 벗고 돌아다니는 ‘집구석’ 안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서나 내가 걸어들어갈 수 있는 서점에서라도, 어차피 전산이 잘 갖추어진 요즈음 세상에서, 같은 책을 또 사려는 손님에게 친절하게 ‘선물 포장 해 드릴까요?’라고 호의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넌 지금 같은 책을 또 사고 있어!’라고 알려주면 어떨까?

제대로 된 CRM도 하나 만나기 힘든 세상에서 어떤 LLM이 잘 빠졌다고 우리 사회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은 정말 큰 웃음을 자아낸다. AI는 우리 문명이 만들어 내고 있는 하나의 이기(利器)이지 않던가. 그런데 그것이 인류사회를 박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새로운 문명의 출발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하지만,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 터이고, 만약 오늘날의 AI가 그 때의 바벨탑과 진배없다 하더라도 신께서 노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그들의 피조물들이 어버이의 행동을 따라하는 기특함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게 고작 LLM으로 기폭된 오늘날의 AI이라고 불리우는 지능이 아닌 것에 불과한 것이 조금 모양이 빠지지만.

오늘 저녁 시간은 쌓아놓은 나의 창작 소설을 곰곰히 다시 읽으며 보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AI로 인해) 세상이 망하더라도, 이 책이 출간된 다음 날 망했으면 좋겠다. 내가 다시 읽어보니 상당히 괜찮다, 물론 딱 70%만 고치면 말이다.


  1. 저렴해서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종이 위에 2B 연필로 무언가를 적을 때 느낌이 매우 좋다 - 이건 마치 Sun Type 3 키보드로 /etc/system 에 커널 튜닝 값을 넣는 낭만과 비슷하다 하겠다. Sun Type 3의 현대적 모습은 HHKB라고 할 수 있다.

  2. 이런 주장은 다시 문송한 미디어 관계자들에 의하여 확대되고 널리 유통되어 사회에 영향을 주는 코미디가 연출되는 일이 흔하다.

(상단 그림은, Google의 ‘Nano Banana 2, gemini-3.1-flash-image’로 작성했습니다) (linkedIn Article SF 장르, 평론, 소설, 책 그리고 AI와 함께 포스팅합니다, 같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