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좋은 건 없고, 비싸고 나쁜 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기술의 선택과 이용에도 비용이 든다. 그래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도입가격과 유지비용 등을 저울질을 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 대체로 합리적인 접근이다. 그리고 이런 저울질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건축가는 (요즈음 동네 개이름보다 흔하게 보이는 Solutions Architect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Solution Architect도 아니고 Solutions Architect라니)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가장 유효한 질문이 ‘예산’이고 가장 먼저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IT도 그러 해야 한다.
우리는 왜 예산부터 불어보지 않는가? 장사치처럼 보여서 인가? 예산을 확정하지 않으면 도입할 솔루션에 대한 설계가 제대로 될 수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피아 게임이나 하듯이 대충 머릿속에 마음에 드는 f(x)를 하나 집어넣고 소문과 풍문으로 고객의 사정을 변수로 대충 정하고 고객의 호주머니 사정을 ‘겐또’ 때리게 되는 것이다. 번번히 틀린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지만,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이런 일은 반복이 가능하다.
10억 예산을 바탕으로 지어내는 건축물과 1억으로 지어내는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10억 예산으로 설계를 하고, ‘아 근데, 비싸. 싸게 지어. 근데 그 기능은 다 있어야 해’ 라며 설계변경 없이 10억짜리 건축물을 1억으로 지어 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양아치 짓이다. 근데 IT에서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매일 일어난다. 개판이다.
원하는 청사진을 (무지개 사진이라고 해야 하나?) 제시해 놓고, ‘너 할 수 있어?’라는 경쟁사와 줄을 세워 놓고 견주기를 일관하다가 – 대체로 가스라이팅 기법이 활용되고 이 때 접대도 은근히 요구한다 – 가장 중요한 ‘비용’을 고려할 단계가 임박하면, 시중 잡배들이 하던 좀스러운 언행을 멈추고 고고한 학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스스로 선비라 여기는 고객이야 말로 정말 나쁜 놈이다. 그런 고객에게 ‘비용’의 문제는 확실히 지적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싸고 좋아 보이는 것은 있을지라도. 혹은 싸기 때문에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동시에, 비싸고 나쁜 건 있다. 쿠팡에서 23,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마우스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걸 용산 좌판에서 135,000원에 팔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치루는 금전의 크기에 비례하여 가치를 반드시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10년 장롱면허를 극복하고자 몰래 몰고 나간 아빠차를 1백미터 움직이기도 전에 사고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사고를 내는 것으로 운전에 대한 기회에 대한 비용을 치루었지만 운전자가 얻는 가치는 마이너스라고 평가해야 한다. 만약 이번 일이 5번째이고, 아빠차가 포르쉐라면, 그 자식의 현명한 선택은 자신의 운전면허를 없애는 것이다.
어떤 계획을 수립하든 예산문제부터 확실히 하는 것이 첫 번째 덕목이다. 어떤 기술을 도입하든지, 비용의 문제를 확실히 검산하는 것이 두 번째 덕목이다.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멋진 기술이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기술 공급자 입장에서도 고객의 호주머니 사정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고객은 (다시 말하지만) 가스라이팅을 시전하면서 본인의 예산 문제를 공급자에서 떠넘기지 말자, 정말 거지같이 보인다. 당신이 고객이기 때문에 모르는 척 굽실거리는 것뿐이다. 이걸 착각하지 말자. 그러니까, 예산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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